“나의 존재 전체는 문학을 향해 있습니다”

민음사 이정화 편집자가 사랑하는 카프카의 소설들과 카프카 작품이 한국에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왜  ‘카프카적’이라는 용어가 특히 ‘문’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민음사 이정화 편집자가 © 주한독일문화원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민음사 해외 문학팀 이정화입니다. 해외 문학 단행본과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편집하고 있습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한국에서 인기가 유독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카프카의 ‹변신›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현대인의 어떤 불안한 정서를 카프카의 작품이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변신› 같은 경우에도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갑자기 쓸모없고 무능력한 벌레가 돼버리잖아요, 이전에는 가장 역할을 하다가…… 우리가 모두 살아가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잘해야 할 것 같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그런 압박을 사실 받으면서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조금 유독 그런 압박이 되게 많은 것 같아요. 인정받아야 하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한 정서가 어떤 면에서는 이 작품을 통해서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이제는 젊은 분들도 『변신』을 정말 많이 사랑해 주시는데요, 그런 부분이 반영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도 듭니다.

카프카의 소설에서는 종종 아버지와의 불화와 그로 인한 불안함이 소재로 쓰입니다. 실제 카프카의 삶은 어땠나요?

카프카는 일단 태생부터 이방인이었습니다.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체코어 대신에 독일어를 모국어로 썼고, 유대교 신앙이 없는 유대인이었고요. 유대인인데 독일어를 썼다?…… 그래서 어디에도 사실 소속감을 느끼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법처럼 군림하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 상대적으로 어머니는 카프카를 잘 보호해 주지 못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카프카 입장에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상황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러한 기질들이 아주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로 부분에서도 카프카는 글과 그림을 몹시 좋아해서 그것을 업으로 삼고 싶었는데 아버지의 강압 때문에 법학을 공부하고 보험회사에서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만 작업을 하는 그런 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청년 시절의 카프카의 경우에는 펠리체 바우어(Felice Bauer)를 굉장히 사랑해서 두 번이나 약혼을 하지만 결국은 파혼하게 되는데, 그것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또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문학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되게 안타깝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폐결핵으로 요양원에 가게 됐는데, 일을 하지 않고 요양을 하면서 글을 더 많이 쓰는 시간이 주어져서 다행스럽다는 그의 말처럼 굉장히 안타까운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카프카에게 아버지의 영향력이 굉장히 지대했던 게, 카프카의 소설 전반에서 아버지라는 법, 규율, 어떤 강압적인 권력, 이런 것들로 상징화되어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아버지와의 대치가 아주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고…… 그리고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어요. “아버지는 왜 무조건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나를 그렇게 방치하셨나” 그런 원망의 부분도 있는데, 이것도 안타까운 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어머니한테 아버지에게 전달해달라고 드렸는데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전달을 안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아버지하고 화해하지는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데요. 그런 면에서 아버지라는 법이 대단히 큰, 카프카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어떤 거울 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카프카에스크(kafkaesk)’이란 형용사가 존재합니다. 편집장님은 이 형용사를 어떻게 해석했나요?

이 ‘카프카에스크(kafkaesk)’라는 용어는 전영애(번역가) 선생님이 『돌연한 출발』을 편집할 때 글에다 적어주신 용어인데,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저도 자주 인용했는데…… ‘카프카에스크’라는 형용사는 ‘거처할 곳 없음’, ‘실존적 상실’, ‘관료주의’, ‘부조리성’ 이런 것들의 징표를 보이는 어떤 한 세계를 나타내는 용어라고 하는데요. 저는 이 카프카에스크적인 용어로 ‘출구 없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카프카에게 가장 중요한 어떤 오브제를 꼽자면 ‘문’이 아닐까 싶어요. 닫힌 문. 자기를 향해서는 닫혀있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는 열려있으나 그쪽으로 향할 수 없는. 그래서 카프카에스크적인 것을 표현할 때 저는 ‘출구 없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편집장님이 추천하는 카프카적인 카프카의 소설은 무엇인가요?

저는 카프카의 모든 작품을 다 사랑하지만, 그중에서 ‹유형지에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1919년 쿠르트 볼프(Kurt Wolff)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이 되었는데, 그전에 카프카가 낭독으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고 해요. 지인들과 친구들 앞에서 두 번의 낭독을 했다고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낭독을 굉장히 좋아해서 카프카가 이 작품을 낭독했을 때 어떤 분위기였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너무나 궁금하기도 해요.

1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아서 카프카가 쓴 작품인데, 사형 기계와 사랑에 빠진 장교의 광기 어린 이야기입니다. 사형 기계와 어떤 규율에 집착한 나머지 누가 사형을 당했는지, 그리고 그 사형수에게 왜 사형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는 그런 비인간적인 상황들이 펼쳐지는데요. 저는 이 작품이 우리가 어떤 법과 규율에 맹목적으로 숭배하거나 맹신했을 때 인간적인 것 혹은 인간다움에 대해서 어떻게 상실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방치했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느냐를 잘 드러내 주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이럴 때 우리가 이런 전쟁에 휘몰아치는 광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자각해야 하는지를 의미심장하게 드러내 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최근에 이 작품이 조금 더 깊이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카프카의 드로잉을 책 표지로 종종 사용하셨는데요. 카프카의 드로잉에 관해서 설명해 주세요.

저는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 홈페이지 디지털 아카이빙을 통해서 카프카의 드로잉을 접했는데요. 일단 처음에 느껴지는 것은 ‘카프카스럽다’, 간결하고 뭔가 인상적인 어떤 부분들을 아주 굵게 표현한 그런 부분은 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카프카는 글만큼이나 그림을 좋아했다고 해요. 프라하 대학에 다닐 때도 검은색 노트에다가 늘 글과 그림을 같이 썼다고 하는데, 그때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 아카이빙 자료에서 제가 검색한 내용이 카프카의 검은색 노트에 드로잉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 ‘나는 알지 못하는 여행’이라는 제목의 글이 적혀 있는데, 문구를 잠깐 소개하자면…… 1920년대에 쓴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그녀는 잠들고 나는 그녀를 깨우지 않는다.’ 이런 문구가 있었다고 해요. 여기서 그녀가 어떻게 보면 카프카에게는 글쓰기를 택하느냐, 그림을 선택하느냐에 대한 문제이고, 깨우지 않는 그녀가 어떤 그림일 수도 있겠다는 저 혼자만의 생각을 해봤는데요. 만약에 카프카가 글 대신에 낮에 일하다가 밤에 와서 그림을 그렸다면 어쩌면 우리는 도서관보다는 미술관에서 카프카의 작품을 더 많이 감상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편집장님이 뽑은 카프카 최고의 한 문장은 무엇이며, 아직 카프카를 읽지 않은 미래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카프카의 편지 중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나의 존재 전체는 문학을 향해 있습니다. 문학을 떠나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이 말이 사실 되게 의미심장하게 느껴진 문장인데 사실 정말 많은 것들을 함축하는 것 같아요. ‘존재 전체가 문학에 있다’라는 것 자체가 사실 이미 카프카의 어떤 지향점을 다 예견하게 해 주는 것만 같아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작가라면 어떤 작품을 쓸까?”라고 이미 상상하게 되는 그런 문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카프카를 읽고 카프카의 생애에 대해 알아 가면서, “카프카는 문학 안에서, 문학을 향해서 살았고, 문학 안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구나”라는 것들을 알게 되는 그런 문장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금 왜 카프카를 왜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제가 정말 많이 최근에 받았는데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지만 편집하는 내내 저한테는 아주 큰 숙제이자 화두였던 것 같아요. 만약에 내가 지금 사는 게 괜찮고, 불안하지 않고, 뭔가 이 세상이 모순적이지 않고, 때때로 내가 이방인 같다고 느끼지 않으면 카프카를 읽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살면서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지? 나는 왜 이방인 같지? 그리고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모순적이지?”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카프카를 읽으면 묘하게 스며드는 어떤 위안 같은 게 있어요. “아! 나만 불안한 게 아닌가 봐, 나만 세상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봐.” 이런 느낌의 동감의 정서, 이런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 때 카프카를 읽으면 나의 어떤 삶과 이입해서 어떤 위안의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는 약간 거칠게 표현하면 얻어맞는 느낌이 있어요. 일상에서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갑자기 문득 낯설어지는 느낌이 들 때처럼…… 그때 약간 긴장되잖아요. 카프카의 문장을 읽었을 때 딱 얻어맞는 느낌이 들면서, “아! 내가 그때 느꼈던 외로움, 불안, 이런 것이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구나, 그리고 지금 내가 내 삶에서 놓치는 것일 수도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어제 사실 인터뷰 전에 이 생각을 했는데…… 나는 인생에서 도끼가 필요할 때 카프카를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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